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라어버시란?
sm-stack · 2026.05.19 · Research
블록체인이 실제 금융 인프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핵심 과제로 떠오른 ‘기관용 프라이버시’의 필요성과 기술적 진화를 다룹니다. 모네로, 지캐시, 토네이도캐시부터 FHE, 프라이빗 체인, Privacy Boost까지 주요 접근법을 비교하며, 규제 준수, 자기 커스터디, 퍼블릭 체인 컴포저빌리티를 함께 만족하는 프라이버시 인프라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라이버시란? 1. 블록체인+기관, 인프라는 준비되었는가? 2026년 현재 블록체인은 실제 금융 인프라로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핵심 플레이어들의 최근 행동으로 엿볼 수 있다. 2026년 2월 블랙록(BlackRock)은 약 22 24억 달러 규모의 토큰화 미 국채 펀드 BUIDL을 유니스왑(Uniswap)에서 거래 가능하게 만들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DeFi 프로토콜을 공식 채택한 것이다. 앞서 2025년 11월에 제이피모건(JP Morgan)은 퍼블릭 L2 체인 베이스(Base)에 예치 토큰 JPMD를 정식 출시하며, 주요 은행으로서는 최초로 실제 자금을 퍼블릭 블록체인에 올렸다. 그리고 2026년 3월 한 주 사이에 마스터카드(Mastercard)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BVNK를 최대 18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발표했고, 스트라이프(Stripe)와 패러다임(Paradigm)이 합작한 결제 전용 블록체인 템포(Tempo)의 메인넷이 출시되었다. 즉 자산운용사, 상업은행, 카드 네트워크, 결제 플랫폼 등 주요 행위자가 같은 시기에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규제 역시 이 전환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5년 7월 서명된 미국 GENIUS Act와 EU의 MiCA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한 1:1 준비금 의무, 정기 공시, 감사 요건 등 유사한 정책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위 활동들을 규제 바운더리 안에 포함시키려고 하고 있다. TRM Labs에 따르면 2025년 검토된 주요 30개 관할권 중 70% 이상이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진전시켰고, 80% 이상의 관할권에서 금융기관이 디지털 자산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규제 불확실성이 채택의 가장 큰 장벽이었던 시기는 끝났고, 이제 문제는 '어떠한 형태로 블록체인을 사용할 것인가'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전환의 장벽이 되는 것은, 프라이버시이다. 금융은 본래 기밀성을 기본값으로 설계되어 있다. 개인의 잔고, 은행의 지급준비 포지션, 자산운용사의 매매 의도, 기업 간 정산 내역 등, 이들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순간 개인의 프라이버시 유출뿐만 아니라 프론트러닝, 시장 조작, 경쟁 정보 유출이 즉시 발생한다. 반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모든 트랜잭션이 영구 원장에 공개되는, 정반대 원칙 위에 세워졌다. 기관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실제 금융 인프라로 쓰려면, 기본값으로 설계된 '완전한 투명성'을 규제 환경에 맞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블록체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프로젝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시도해 왔다.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밀어붙인 프로젝트, 영지식 증명을 통해 선택적 프라이버시를 구현한 프로젝트, 이더리움과 DeFi 위에서 프라이버시를 가능하게 하려 한 프로젝트, 그리고 최근에는 규제 환경까지 고려하며 프라이버시와 감사 가능성을 함께 다루려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그 흐름을 따라가며 블록체인 프라이버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고, 실제 규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솔루션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본다. 2. 블록체인 프라이버시의 첫 해법: 독립 체인이 보여준 가능성과 한계 2.1 모네로(Monero): 프라이버시를 기본값으로 모네로는 사실상 최초의 '프라이버시 네이티브' 블록체인이다. 2012년 크립토노트(CryptoNote)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2014년 출시된 이래, 현재까지 가장 오래 운영되는 프라이버시 블록체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네로를 이해하려면 UTXO(미사용 트랜잭션 출력)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UTXO는 블록체인이 잔고를 기록하는 방식 중 하나로, 각 사용자의 자금을 단일한 계좌 잔액 하나로 관리하는 이더리움과 달리, 지갑 안의 '지폐' 단위를 낱개로 추적한다. 이 구조에서는 각 단위를 독립적으로 다룰 수 있어, 뒤에서 살펴볼 링 서명처럼 '내 지폐를 다른 사람의 지폐들 사이에 섞어 넣는' 기법이나 '정보 공개 없이 소유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기법을 적용하기 유리하다.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모네로는 이 UTXO들을 머클 트리로 관리하는데, 이 구조는 이후 지캐시와 EVM 기반 프라이버시 프로토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설계 패턴이 된다. 2.1.1 3중 레이어 프라이버시 아키텍처 모네로의 프라이버시는 세 개의 독립된 레이어로 구성된다. 링 서명(Ring Signature) : 발신자 모호화를 위해 모네로에 도입된 구조이다. 트랜잭션 발신자는 자금을 전송할 때, 체인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15개의 '위장' 출력값을 묶어 실제 UTXO와 함께 16개짜리 링을 구성한다. 외부 관찰자는 16개 중 하나가 진짜 발신자임을 알 수 있지만,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 스텔스 주소(Stealth Address) : 수신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장치이다. 발신자는 수신자의 공개 주소로 직접 자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 주소에서 일회용 수신 주소를 도출한 다음, 거기로 자금을 보낸다. 이 일회용 주소는 체인에 기록되지만 원래의 공개 지갑 주소와 연결되지 않으며, 수신자만이 자신의 비밀 키로 이를 식별하여 받은 자금을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RingCT : 금액 은폐를 위해 2017년 도입된 구조이다. 페데르센 커밋먼트(Pedersen Commitment)와 범위 증명을 통해, 금액을 랜덤 숫자처럼 보이는 '커밋먼트'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상태에서도 거래 전후 금액 총합이 일치하는지, 금액이 유효한 범위 안에 있는지를 모두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보내는 금액이 얼마인지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다. 이 세 레이어를 통해 모네로 트랜잭션에서 드러나는 정보는 16개의 '발신자 후보', 일회용 수신자 주소, 그리고 알 수 없는 금액 커밋먼트뿐이다. 모네로와 같은 UTXO 구조가 프라이빗 전송에 특히 적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더리움과 같은 계정 기반 구조는 '이 주소에 얼마가 있다'는 잔고 자체를 상태로 저장하기 때문에, 금액을 숨기거나 발신자를 섞는 방식을 적용하기가 구조적으로 훨씬 까다롭다. 2.1.2 프라이버시와 사용성의 트레이드오프 모네로는 이를 통해 강력한 수준의 프라이버시를 달성했지만, 이 때문에 사용성 측면에서 상당한 대가를 치른다. 모네로에서는 각 출력마다 발신자가 생성한 일회용 공개 키만 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수신자를 알 수 없다. 대신 수신자 본인은 자신의 뷰 키와 해당 출력에 첨부된 트랜잭션 공개 키로 계산을 수행해, 이 UTXO가 자신에게 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출력이 자기 것인지 미리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지갑이 체인의 모든 UTXO에 대해 이 계산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갑을 한 달 동안 열지 않았다가 다시 켜면 그동안 쌓인 약 21,600개 블록 분량의 UTXO 전부를 처리해야 한다. 2022년 8월 도입된 뷰 태그(View Tag)로 스캐닝 시간이 30 40% 이상 단축됐지만, 구조적 부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발신 쪽 역시 복잡하다. 모네로 지갑은 전송 전에 로컬에서 디코이 15개 선택, 일회용 스텔스 주소 생성, 금액 인코딩, 범위 증명 생성, 링 서명 생성을 순차적으로 수행한다. 이 모든 연산이 완료된 후에야 트랜잭션이 노드로 제출된다. 결국 모네로의 프라이버시 보장은 중앙 서버나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없이 수학적으로 달성되지만, 그 계산 부담은 전부 사용자 기기 위에 올라와 사용자 경험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모네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프라이버시 프로토콜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구조적 병목이다. 2.1.3 뷰 키(View Key): 선택적 감사의 가능성과 한계 모네로에는 뷰 키라는 선택적 공개 메커니즘이 있다. 뷰 키 보유자는 특정 지갑으로 들어온 입금 내역과 금액을 복호화할 수 있어, 세금 신고, 기부 증빙, 내부 회계 점검 같은 용도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기본값으로 유지하면서도 필요 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모네로의 뷰 키는 공개 범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도구라기보다 지갑 전체의 수신 내역을 열람하게 하는 포괄적 접근 권한에 가깝다. 특정 기간, 거래 상대방, 혹은 금액 범위를 한정해 보여주는 식의 제한적 공개는 지원되지 않는다. 2.1.4 모네로가 남긴 것 모네로는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도 발신자, 수신자, 금액을 강하게 보호하는 전송 시스템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음을 가장 일관되게 보여준 사례이다. 동시에 모네로는 이 프라이버시를 얻기 위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높은 클라이언트 측 연산 부담은 사용성을 떨어뜨렸고, 선택적 공개도 세밀한 범위 지정보다는 포괄적 열람에 가까웠다. 즉, 모네로는 강력한 프라이버시를 갖춘 체인 중 하나이지만, 다양한 자산 활용과 정교한 감사가 함께 요구되는 환경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2.2 지캐시(Zcash): zk-SNARK로 설계된 선택적 프라이버시 2.2.1 최초의 zk-SNARK 기반 블록체인 2016년 일렉트릭 코인 컴퍼니(Electric Coin Company)가 만든 지캐시는 최초로 zk-SNARK(영지식 간결 비대화형 논증)를 도입한 프라이버시 블록체인이다. zk-SNARK는 "이 거래는 유효하다"는 사실을 거래의 어떤 내용도 드러내지 않고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기술이다. 지캐시에서 이는 프라이빗(shielded) 트랜잭션을 전송할 때 사용된다. 프라이빗 트랜잭션을 생성하는 지갑은 다음 네 가지 사실을 zk-SNARK 증명 하나로 나타낸다. 존재성 : 전송하려는 자금이 트리에 실제로 존재한다 소유권 : 그 자금을 소비할 권한을 가진 키를 보유하고 있다 미사용 : 그 자금은 이미 소비된 적이 없다 잔액 보존 : 입력 금액의 합과 출력 금액의 합이 일치한다 지캐시 노드는 발신자, 수신자, 금액을 전혀 알 수 없으며, 이 ZK 증명 하나만 검증하면 된다. 이 접근은 모네로와 비교했을 때, 익명성의 범위를 크게 넓힌다. ZK로 보장되는 익명성 집합은 지캐시 내 프라이빗 풀에 존재하는 모든 UTXO이며, 2016년부터 누적된 전체 UXTO를 포함된다. 모네로에서 링 서명은 ‘16개 후보 중 하나’라는 확률론적 모호성에 의존하지만, 지캐시의 zk-SNARK는 ‘발신자와 금액에 관해 어떤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학적 보장을 제공한다. 2.2.2 지캐시의 데이터 구조: 노트, 커밋먼트, 널리파이어 지캐시의 프라이빗 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데이터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노트(Note) & xB294; 비트코인의 UTXO에 해당한다. 수신자 주소, 금액, 무작위성을 담은 데이터 구조로, 지갑이 로컬에 복호화하여 보관하지만 체인에는 평문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노트 커밋먼트(Note Commitment) & xB294; 노트의 해시다. 체인 내 풀에는 노트가 아니라 이 커밋먼트만 기록되며, 커밋먼트만 봐서는 노트 내용을 알 수 없다. 새 노트가 생성될 때마다 커밋먼트가 머클 트리에 추가되는데, 이 트리는 2016년부터 누적된 모든 노트의 커밋먼트를 담고 있다. 널리파이어(Nullifier) & xB294; 이중 지불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지캐시의 각 노트는 고유한 널리파이어와 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노트를 소비할 때 발신자는 연결된 널리파이어를 체인에 공개하며, 노드들은 이 널리파이어가 이전에 등장한 적 있는지 확인해 있으면 이중 지불로 거부한다. 핵심은 널리파이어만 봐서는 어떤 노트가 소비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널리파이어와 커밋먼트 사이의 연결은 zk-SNARK 증명 안에 숨겨져 있고, 외부에는 널리파이어만 공개된다. 2.2.3 트랜잭션 생성 흐름 지캐시에서 프라이빗 트랜잭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1. 발신자 지갑은 소비할 노트를 선택하고, 이에 대한 머클 증명을 계산한다. 2. 수신자를 위한 새 노트를 생성해, 수신자의 공개 키로 암호화한 뒤 트랜잭션에 첨부한다. 3. 사용할 노트의 널리파이어를 계산하고, 머클 경로 / 개인 키 / 노트 내용 / 널리파이어 / 금액을 기반으로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사실을 동시에 증명하는 zk-SNARK 증명을 생성한다. 4. 완성된 트랜잭션은 체인에 새 커밋먼트, 소비된 노트의 널